발달장애인 보호자들, '돌봄의 고립'에 갇혔다 [조금 느린 세계](202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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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5.06.1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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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을 돌보는 보호자들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적신호가 켜졌다. 보호자 10명 중 4명은 돌봄을 혼자 책임지고 있으며, 10명 중 1명은 지난 1년간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돌봄에 갇힌 보호자 일상, 정신 건강 문제 심각
지난 1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수행한 ‘발달장애인 실태분석 및 제도개선을 위한 전수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6월까지 전국 5개 지역에서 발달장애인 3182명과 보호자 26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차 선별조사 결과, 보호자들의 돌봄 부담과 정신적 소진이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돌봄의 고립'이었다. 보호자의 43.0%는 발달장애인을 오직 혼자서 돌보고 있었고, 보호자 4명 중 1명은 갑작스러운 상황이 생겨도 대신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하루 평균 돌봄 시간은 평균 9.4시간에 달했고, 51.6%는 하루 5시간 이상 돌봄에 매달리고 있었다.
보호자의 대다수는 중장년층 여성이었다. 보호자 중 71.5%가 여성, 연령대는 40~59세가 51.5%로 가장 많았고, 60세 이상 고령 보호자도 40%가 넘었다. 보호자와 발달장애인의 관계는 ‘어머니’가 60.9%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아버지 19.1%, 배우자 7.5%, 형제·자매 5.4%, 조부모 3.3% 순이다.
정신 건강 지표도 매우 취약했다. 보호자들이 돌봄과 관련해 자주 느끼는 감정은 ▲앞으로 발생할 일에 대해 걱정이 됨(63.7%) ▲휴식이 필요하다고 자주 느낌'(37.2%) ▲외식이나 외출을 하거나 휴가를 떠나기가 어려움 등이었다.
보호자의 18.5%는 최근 1년 안에 병원 또는 전문가를 찾아 심리상담이나 진료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7.9%는 정신건강 관련해 복용하는 약이 있었다. 약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우울, 불안, 공포, 강박 등 심리 정서적 문제'(71.8%)와 수면 문제(36.4%) 등이었다.
지난 1년 동안 극단적 선택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는 응답도 전체 보호자의 10.1%였다. 이 중 18.7%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었고, 9.3%는 실제로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아이 치료만큼 '보호자 마음 돌봄' 중요… 적극 치료해야
이 같은 결과는 발달장애인 본인뿐 아니라, 그들을 오랜 시간 돌봐야 하는 보호자 역시 치료와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을 만나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많은 부모가 지속적인 돌봄 부담 속에 심리적으로 피폐해지고, 병을 얻는 경우가 많다. 가천대길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배승민 교수는 과거 인터뷰에서 “발달장애아 육아의 긴 여정에서는 부모의 정신·마음 건강이 아이 케어보다도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며 “스스로 최적의 건강 상태를 먼저 만든 후에 가족을 보살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호자가 스스로 괜찮다고 느껴도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길 권한다. 주 양육자의 정서 상태는 아이의 발달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보호자는 아이 진료와 함께 심리상담을 요청할 수 있으며, 정부의 ▲발달장애인 부모상담지원 ▲우리가족통합심리지원서비스 등을 통해
비용 부담을 줄이고 있다.
지역 육아지원센터나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도 ▲치료 상담 지원 ▲자조 모임 지원 ▲동료 상담가 지원 등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정서적 지지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자조 모임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전문가와 함께
정서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한편, 현행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리지원 서비스나 상담 프로그램이 있지만 실제로 혜택을 받는 경우는 제한적이며,
이용 조건도 까다롭다는 것이다. 인하대병원 행동발달증진센터 이정섭 교수는 “단순히 상담만이 아니라 아동 치료, 보호자의 정신건강 케어,
실질적인 돌봄 지원 등 다방면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