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가족, 제주 ‘맘편한가게’에서 맘 편한 휴가를” [조금 느린 세계] (202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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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5.07.25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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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자녀가 있는 가정에 휴가는 '설렘'보다는 '도전'에 가깝다. 취재 중 만난 한 발달장애인 자녀 어머니는
"같은 카페, 마트, 미용실이어도 혼자 갈 때와 아이와 함께 갈 때의 '나'는 전혀 다르다"며 "괜히 눈치가 보이고, 작아지고,
아이에게 불필요한 주의를 주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주거지에는 자주 방문하면서 익숙한 곳이 생기지만
휴가지에서 발달장애인 가정은 또다시 커다란 '장벽'을 마주해야 한다.
최근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제주도에서 나타났다. 제주도의 한 협동조합에서 지난달 '맘편한가게'를 카카오맵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도입했다.
◇제주도 ‘맘편한가게’, 발달장애 가족이 직접 찾아
'맘편한가게 지도'는 발달장애인 부모 단체인 '행복하게' 사회적협동조합이 발달장애 가족이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가게 정보를 모은 것으로,
지난 2022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했다. 올해 처음으로 카카오맵에 연동돼, 더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지도에는 식당, 카페, 베이커리, 마트, 의료기관, 숙소 등 총 9개 분야 194개의 가게가 포함됐다.
직접 찾아가 봤다.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식당에 가기 위해 카카오맵에 '맘편한가게'를 검색했고,
걸어서 15분 거리의 돼지고깃집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관광객보다 지역 주민들로 자리가 채워져 있었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맘편한가게 지도를 보고 찾아왔다고 이야기하니, 밑반찬을 내주던 가게 영업자 A씨는
"맘편한가게 서포터즈 서귀포시 지원단 김주리 팀장과 인연이 있어 동참하게 됐다"며
"발달장애가 있든 없든 손님으로 여겨,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A씨를 통해 김 팀장과 연락이 닿았다.
김주리 팀장은 "현재 맘편한가게는 구역별로 해당 지역을 잘 아는 발달장애 가족이 실제 이용해 본 가게를 기반으로 직접 발굴하고 있다"며
"한 번은 맘편한가게 발굴 과정을 개인 SNS에 공유했더니 지역 점주들이 먼저 함께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기도 했다"고 했다.
발달장애 가족이 직접 추천한 가게는 맘편한가게 프로젝트팀이 다시 전화, 방문 등의 모니터링을 거친 후 지도에 등록된다.
행복하게 사회적협동조합은 발달장애인 특성과 응대할 때 주의할 점 등을 매뉴얼화해, 서포터즈를 일차 교육하고
서포터즈를 통해 맘편한가게 점주 교육을 진행한다. 주기적으로 모니터링도 진행되고 있다.
행복하게 사회적협동조합 김덕화 이사장은 "발달장애 가족이 평범한 일상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맘편한가게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며
"매년 가게 수 확대, 접근성 강화를 목표로 성장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카카오맵에서 찾을 수 있어
제주도민뿐 아니라 제주에 여행 오는 전국의 발달장애 가족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용자 만족도 높아… "전국 확대되길"
"맘편한가게 지도를 알게 됐을 때 우리 가족은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았어요".
자폐성스펙트럼장애인 남동생이 있는 이해영(39·경기도 하남시)씨의 말이다.
이씨는 "동생이 제주 여행을 매우 좋아해서, 제주를 자주 찾는다"며 "동생이 중증 자폐성 장애가 있어서,
사람이 잘 가지 않는 시간에 조용한 식당 위주로 찾아다녔는데 맘편한가게가 나와 매우 반가웠다"고 했다.
맘편한가게를 반가워한 건 이씨 뿐만이 아니다.
김주리 팀장은 "제주를 찾는 많은 발달장애 가족 여행객이 맘편한가게 정보를 확인하고 온다"며
"'여기는 괜찮다'는 확신을 갖고 방문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된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물론 제주도민 발달장애 가족의 활용성도 크다.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첫째와 비장애인 둘째를 키우고 있는
유현정(44·제주시 도련동)씨는 "그간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가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며
"맘편한가게라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처음으로 용기 내서 갈비집을 갔고, 식당에서 가족 모두와 편하게 고기구워 먹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취재 중 만난 모든 이들이 제주뿐 아니라 전국 곳곳으로 맘편한가게가 퍼지길 바랐다.
김주리 팀장은 "발달장애인이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물리적·인권적 환경이 갖춰진 공간은 누구에게나 마음 편한 곳이 될 수 있다고 본다"며
"맘편한가게는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통합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밑거름"이라고 했다.
다만, 이런 공간이 전국적으로 지속·확대되려면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십중팔구 민간 주체로 운영… 위태한 지속가능성
현재 여러 다른 지자체에서도 맘편한 가게와 비슷한 발달장애 친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홀트강동복지관은 발달장애인 친화 상점을 열 개 내외로 모집해 운영 중이고,
구리시는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에서 여덟 개의 발달상애 친화 상점을 '누구나상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다수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고 정부에서 나서 운영되는 곳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대다수 협의체나 복지관에서 운영해 예산이 제한적이다.
제주시의 맘편한가게도 제주시와는 별개로 협의체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덕화 이사장은 "다행히도 우리는 지원 사업 공모를 통해 예산을 구축해 가고 있지만,
앞으로 사업을 더 확대하고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시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안산시의 오소가게처럼 제주도도 장애 친화 가게를 제도화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안산시의 '오소가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지자체가 참여해 운영하는 장애 친화 가게다.
안산시를 중심으로 안산시장애인복지관, 안산시상록장애인복지관, 꿈꾸는느림보 사회적협동조합 등이 함께 협력해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20년에 정식 출범해 현재 228개소를 관리하고 있다. 오소가게 관계자는 "장애 친화 가게 프로그램을 관과 민이 함께하니,
서로의 단점은 메꾸고 장점은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며 "지자체가 함께해 공신력이 더해져 지속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고,
안정적인 예산 확보로 참여하는 상점에 웰컴 키트, 경사로 설치, 소정의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 마포구에서도 구청과 함께 마포종합복지원 중심으로 발달장애인 포함 장애인 친화 가게 '누구나 가게'를 64곳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이곳도 구청과 함께하다 보니 예산이 나와, 현판, 인증서, 필요에 따라 화장실 핸드레일, 경사로, AAC 의사소통판 등도 제공하고 있다.
◇"민간에서 출발해 지자체 협업해야"
실행력을 얻기 위해 민간에서 주체로 출발해야 하지만, 결국은 지자체의 협력이 장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오소가게 관계자는 "장애 친화 가게 프로그램이 확대되려면 결국 각 지역의 지자체에서 나서줘야 한다"고 했다.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김미옥 교수는 "발달장애 가족은 실제로 공공기관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보니 사회적으로 단절되기 쉽다"며
"발달장애 친화 가게 같은 좋은 프로그램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려면, 먼저 민간차원에서 운영을 시작하고 지자체가 협동해
함께 운영하는 게 가장 적합한 운영 형식으로 본다"고 했다.
이어 "많은 가족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이번 제주의 카카오맵 활용처럼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을 여러 지자체에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계점도 있다. 오소가게 관계자는 "협동해서 운영하다 보니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시간이 다소 걸린다"며
"바로 성과를 내려고 하기보다 길게 보고 미래를 그려가야 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또 간혹 취지보다 홍보 효과를 기대하는 가게가 있을 수도 있다.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걸러내는 시스템 정착이 필요하다.
이용하는 발달장애 가족은 가게 상황에 따라 실운영자가 아닌 사람이 있는 시간에 방문할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친화 가게를 활용해야 한다.
김덕화 이사장은 "맘편한가게는 장애 포용적 환경, 문화를 만드는 캠페인의 성격이 더 크다"며
"궁극적으론 맘편한가게가 따로 없어도, 발달장애인 가족의 사회적 활동이 위축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