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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인권 이야기] 배려보다는 존중을, 돌봄보다는 지원을(202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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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5.08.0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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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경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장혜경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몇 달 전, 제주시 탑동의 한 순두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일이 있었다. 모임에 가입하고 첫 참석이었기에 며칠 전부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모임의 시작은 맛집을 찾는 것이 보통이었을텐데, 이날은 휠체어 접근성이 좋은 곳으로 장소가 쉽게 정해졌다. 

참석자 중 뇌병변장애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분이 네 분이었고, 손을 사용하기 어려운 분들은 동행자와 함께한다고 했다.

이러한 상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고민을 안겼던 건 의사소통이었다.

언어장애로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해 다시 말해 달라고 요청해야 하고, 그래도 어려우면 천천히 반복해서 들어야 하며, 

마지막엔 문자로 요청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이 있었다. 처음 뵙는 분들도 많은 자리였기에 질문도 많을 것 같아 걱정이 컸다.

막상 자리를 함께 해보니, 내가 쓸데없는 우려를 범했다. 함께 참석한 동행자나 참석자 중 의사소통이 가능한 분들이 대신 전달해주었다. 

무엇보다 대화 주제는 여느 모임과 다르지 않았다.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뜻이 전달되었고, 몇 마디만 알아들어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다.

예전이라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인가?", "주차 공간은 충분한가?"가 가장 먼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맛이나 분위기, 시선은 그 다음 문제였다. 하지만 이날 방문한 식당의 주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한 

영화제작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장애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하고 필요한 지원을 당연하게 제공해 주었다. 

그래서 더욱 ‘대우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식사 후 일행들과 탑동 방파제로 향했다. 음료를 주문하고 바다와 버스킹도 보기로 했다. 

그러나,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휠체어를 밀며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가, 문득 바다가 잘 보이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휠체어에선 잘 안 보인다”였다. 당황한 나를 향해 “조금 더 가면 낮아서 잘 보이는 데가 있다”고 알려줬다.

경사로를 설치해 휠체어 접근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그 위에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는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장애인의 시선을 ‘존중’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달에는 전국 최초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운영하는 ‘공공부문 장애인 오케스트라’의 창단 연주회가 열렸다. 

꿈과 열정이 만든 아름다운 하모니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고, 연주자들 역시 무대 위에서 행복해 보였다.




단순히 연주 실력이 아닌, 좋아하는 음악을 ‘직업’으로 갖고 당당히 설 수 있게 된 점이 더 큰 울림을 줬다.

그날 내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장면은 관람석의 배치였다. 일반적으로 공연장의 휠체어석은 맨 뒤편이나 자투리 공간에 마련된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내·외빈석 앞쪽의 넓은 공간에, 안전바가 설치된 휠체어 전용 좌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덕분에 관람 중에도 자연스레 시선이 그 공간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어쩌면 당연한 장면이어야 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공연장은 여전히 휠체어석을 관객석의 뒤쪽이나 앞쪽 한켠에 두고 있다. 

좌석 배치를 잘 한다면 충분히 동행인과 나란히 앉을 수 있을텐데 항상 떨어져 있다. 경우에 따라선 시야도 불편하다. 

이는 비상시에 대비한 안전을 위한 선택이라지만, 그 자리에 앉은 장애인은 동행자와 떨어져 홀로 관람해야 한다. 

영화관도 마찬가지다. 영화관 구조의 문제로 휠체어석은 가장 앞쪽에 위치해있으며 스크린도 바로 앞이라 불편함이 크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장애인에게 배려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그러나 ‘배려(配慮)’와 ‘존중(尊重)’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다르다.

 배려는 상대를 관심갖고 헤아려 나누는 것이라면, 존중은 상대의 존재와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향해 배려는 해왔지만, 진정한 존중은 간과하고 있지 않았는가? 돌봄(care)과 지원(support)도 마찬가지다. 

돌봄은 보호하고 챙기는 의미가 크다면, 지원은 개인의 필요에 따라 정보·자원·기술을 제공해 자립할 수 있도록지지 및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한 보호를 넘어, 주체적인 삶을 가능케 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관심은 분명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을 배려의 대상이나 

돌봄이 필요한 수동적인 존재로만 바라보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두에 필자의 경험에서도 언급했듯이 

장애인이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사회, 장애인의 선택과 결정권을 존중하며 

일상 속에서 동등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함께 움직이는 사회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배려에서 존중으로, 돌봄에서 지원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장혜경 / 제주장애인인권포럼>

출처 : 헤드라인제주(http://www.headlineje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