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215회 소통 끝에…현대로템, '종이 열차'의 나라 호주 뚫다(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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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5.12.0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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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176㎞ 마리용 시승기
교통 약자도 편하게 이용
시드니·브리즈번서 2.7조 수주
뉴욕·사우디 등 해외시장 정조준
지난단 27일 찾은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주 시드니 중앙역. 하루 평균 12만명이 찾는 호주 교통의 중심지인
이곳은 NIF(신규 도시 간 열차)에서 타고내리는 승객들로 북적였다. 시드니 근교부터 브리즈번, 캔버라까지
수백㎞ 떨어진 주요 도시에서 찾아온 시민들은 각자 일터로 향하는 시내 순환 열차와 트램에 몸을 옮겨 실었다.
시드니를 달리는 수백 대의 NIF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최신형 이층 전동차인 '마리용' 열차였다.
노후한 기존 차량을 대체하기 위해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가 도입한 열차로, 현대로템이 국산 기술로 만들어 납품했다.
최대 시속 176㎞의 발 빠른 속도로 북·남·서로 309㎞에 달하는 주요 거점을 주파하는 것은 물론 장애인 전용 좌석과 화장실,
인슐린 주사 회수기 등으로 주 정부의 까다로운 기준까지 맞춘 덕분이다.
호주의 국조(國鳥) 에뮤(emu)의 원주민어인 마리용이란 이름이 붙은 열차에 시민들은 '레드 트레인'이란 별명까지 붙여줬다.
휠체어를 타고 차량에 오른 마거릿 무어(58)씨는 "신형 열차가 생긴 뒤로부터 남편의 도움 없이 혼자 출퇴근이 가능해졌다"며
"열차를 예매하기 전 마리용인지부터 확인한다"고 말했다.
현대로템이 지난해 12월 실제 운행을 시작한 마리용 프로젝트를 한국 기자단에게 처음 공개한 것은 호주에서의
대규모 철도차량 발주 사업 수주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했다. 마리용 프로젝트는 현대로템의 첫 번째 호주 진출 사례다.
총 16억 호주달러(1조5000억원)를 들여 610량을 도입하는 사업으로, 2006년 중국 업체가 수행한 와라타 프로젝트(624량) 이후 호주 역대 두 번째 규모다.
호주는 프랑스와 중국, 스페인, 스위스 등 글로벌 철도 강국들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호주 정부는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을 앞두고
철도 인프라 조성을 위해 향후 10년간 약 28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 입찰에서 현대로템은 프랑스 알스톰,
중국 중궈중처(CRRC), 스위스 스테들러 등을 제치고 마리용 사업을 따냈다.
이전까지 호주 수주 실적이 없었던 현대로템은 현지 맞춤형 설계에 '올인'했다. 호주의 '장애인 교통접근성 기준'이 대표적이다.
호주는 인구 약 20%가 장애인으로 등록된 만큼 차량 설계 기준을 엄격하게 두고 있다.
이를 위해 현대로템은 13개월간 장애인단체 등 이해관계자를 215회 만나 총 2871건의 건의 사항을 수렴했다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높은 수준의 디테일을 요구하는 호주 전동차는 각종 인허가 서류로 만든 '종이 열차'로도 불린다"라며 "사전에 제작한 실물 모형을 통해 수시로 피드백을 받는 등 현지 소통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호주 업체들과의 협력도 강화했다. 현대로템은 미쓰비시 일렉트릭 오스트레일리아(MEA), UGL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번 사업을 수주했다.
현대로템이 차량 제조를, MEA와 UGL이 각각 차량 내부 전자제품과 유지·보수를 담당했다.
컨소시엄 사업 책임자는 호주 현지 업체인 UGL 출신 인사를 대표로 선임해 대관 및 대민 업무를 맡겼다.
현대로템은 2023년 퀸즐랜드 QTMP 전동차 공급 계약도 수주했다. 14억 호주달러(약 1조2000억원) 규모로 브리즈번에 전동차 390대를 들이는 사업이다.
여기서도 프랑스 알스톰과 스페인 카프(CAF), 중궈중처 등이 입찰 경쟁에 뛰어들었다. 현대로템은 퀸즐랜드에 설립한 호주 최초의 롤포밍 금속
성형 공장을 통해 현지 생산이 가능한 점을 내세웠다. QTMP 전동차는 2027년부터 순차적으로 납품될 예정이다.
QTMP 전동차에도 교통약자를 위한 혁신 기술들이 호주 최초로 도입될 예정이다.
역사 플랫폼마다 서로 다른 승하차 높낮이를 맞추기 위해 차량 높이를 조절하는 전자식 높이 조절 장치가 이 중 하나다.
전동차와 플랫폼 간의 틈새를 받침대로 연결하는 열차-승강장 간격 보정장치도 들어간다.
현대로템은 호주 수주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철도 발주 사업을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올해 1월 모로코로부터 2조2000억원 규모의 전동차 사업을 이미 수주했다. 호주에선 시드니 메트로 웨스트(SMW) 무인 전동차 96량 사업에 대한 입찰 제안서를 지난 9월 제안한 상태다.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은 "선진 철도 기술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을 비롯해 사우디, 태국, 베트남 등의 추가 수주 사업에도 진출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차체 제작을 넘어 운영과 유지보수, 신호 사업을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 제공업체로 거듭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