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먼 장애인 ‘개인예산제’(20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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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5.11.2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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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자기결정 강화 취지 불구
선정 인원 220명 중 113명 이탈
포기 56% “활동지원시간 부족”
바우처 금액 20% 개인예산 할당
16%는 “이용할 서비스도 없어”
“장애별 맞춤서비스 연계 강화”
정부가 장애인들의 개인 욕구를 주체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도입했지만 시범사업 도중 절반이 넘는
이용자가 중도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예산제가 기존 활동지원서비스 등 바우처 금액 중 일부를 사용하는 구조로 운영되면서
이용자들이 기존 활동지원 시간이 삭감되는 데 부담을 느낀다는 분석이다.
2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장애인 개인예산제 시범사업 모니터링 및 평가분석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개인예산제 시범사업에서 중도 포기한 장애인이 113명으로 집계됐다. 사업 모집 선정 인원 220명 중 절반이 넘는다.
시범사업은 참여 중단자가 발생하면 대기 순번에 따라 신규 참여자를 선정한다.
자기결정권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지난해부터 시범사업이 실시된 개인예산제는 내년부터 본격 확대될 예정이다.
개인예산제는 장애인 활동지원 급여 중 20% 범위에서 ‘나누어’ 개인예산에 할당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새로운 지원금이 지급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사용하던 급여에서 일정 금액을 개인예산제로 쓰다 보니 활동지원서비스 등의 이용 시간이 감소하는 구조다.
시범사업 참여 중단 사유가 확인된 98명 중에서도 절반이 넘는 55명(56.1%)이 ‘활동 지원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이어 ‘이용할 서비스 없음’ 16.3%, ‘이용 서비스 구매 예산 부족’ 6.1%, ‘이용 과정 복잡’ 5.1% 등의 순이었다.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이 절실한 장애인에게는 개인 예산제를 이용하는 데 장벽이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중증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A씨는 “월 180시간가량 활동지원을 받을 만큼 아이가 중증 장애인이다”며 “필요한 물품 등도 구매할 수 있는 개인예산제를 이용하려면 이런 활동지원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활동지원 시간이 감소해 활동지원사의 급여 삭감을 우려하는 사례도 있다. 개인예산제를 중단한 B씨는 “우리 집에 오는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본인이 받는 급여에서 30만원이 줄어들면 생활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개인예산제 이용을 멈췄다”고 말했다.
계획 수립 등의 과정에서 보호자의 의견이 주로 반영된다는 지적도 있다. 보고서는 “의사소통에 제약이 있는 장애인은 당사자의 선택보다 보호자 주도로 계획이 수립됐다”며 “업무 담당자는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장애인의 의사소통 가능 정도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 선호도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아동 장애인의 경우 재활과 치료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자칫 불필요한 재활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꼬집었다.
개인예산제를 지속하는 장애인들은 대체로 만족했다. 참여자들은 개인예산제 재참여 의사에 대해 3.63점(4점 척도)으로 만족이 높았다.
참여자가 가장 많은 개인 예산을 지출한 영역은 건강증진∙재활 등 ‘신체적 건강’으로 40%였으며, 용품∙이동지원 등
‘일상생활’ 18.5%, ‘보육 및 교육’이 17.4%, ‘문화 여가’ 8.8%였다.
개인예산제를 본래 목적에 맞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예산 투입과 함께 장애인 돌봄 서비스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고서는 “활동지원 등 이용 가능한 서비스 자체가 결핍된 상태에서는 자율적 급여 설계의 의미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개인예산제 정착을 위해서는 장애인 돌봄 인력 및 공급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장애 특성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 연계 기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며
“개인예산제에서 이용 가능한 급여의 종류와 범위도 확장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처에서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를
개인예산제 안에서 유연하게 조합할 수 있도록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도 추가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