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놀이터, 제주의 흙 속에서 보물을 찾다(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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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6.05.1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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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내 발달장애 아동을 둔 가족들에게 주말은 종종 '돌봄의 섬'에 갇히는 시간이 되곤 한다. 평일의 공적 돌봄 시스템이 멈추는 주말, 특히 증상이 심한 중증 장애 아동은 갈 곳을 찾기가 더욱 어렵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자연 속 놀이'와 '지역사회 통합'으로 채워가는 이들이 있다. 바로 도토리 프렌즈팀이다.
당사자의 고민에서 시작된 ‘진짜 통합’
김주리 대표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 중 한 아이는 중증 장애를 겪고 있다. 김 대표는 "아이를 데리고 지역사회에 나왔을 때, 중증 장애아라는 이유로 인력 부족을 핑계 삼아 공적 서비스에서 제외되는 현실을 마주하며 사각지대를 절감했다"고 고백했다.
그녀가 주목한 것은 '경험의 부재'였다. 장애 아이와 비장애 아이가 어릴 때부터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어울릴 기회가 없다 보니, 서로를 이해할 토양 자체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존의 통합 프로그램은 비장애 참여자가 주로 장애 아동의 형제·자매인 경우가 많아요. 이건 가정의 연장선일 뿐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라 보기 어렵죠. 비장애 아이들이 스스로 오고 싶어 할 만큼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저희의 핵심 과제였습니다."
흙을 만지고, 보물을 찾으며 허물어지는 벽
도토리 프렌즈의 프로그램은 단순한 돌봄을 넘어선다. 제주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땅속 보물찾기', '오감 놀이', '신체 놀이', '요리 활동' 등은 아이들의 감각을 깨우고 성취감을 선사한다.
인터뷰 중 김 대표는 한 비장애 아동의 사례를 들려주었다. 장애로 인한 감각적인 어려움으로 흙을 만지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장애 친구를 묵묵히 지켜보던 비장애 아이들이, 어느 날 그 친구가 처음으로 흙을 만지자 "선생님! 저 친구가 흙을 만졌어요!"라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는 일화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함께 놀며 서로의 속도와 변화를 읽어냅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장애’라는 딱지가 사라진 사회가 가능해집니다."
‘지속 가능성’을 향한 도전: 인큐베이팅에서 자립으로
도토리 프렌즈는 최근 ‘지역 돌봄 공동체 인큐베이팅 사업’을 통해 활동의 고도화를 꾀하고 있다. 2019년부터 이어온 '수눌음공동체' 활동을 사업화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누군가 이 가치 있는 일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다.
성과는 고무적이다. 프로그램 예약은 오픈 2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만족도 조사 결과, 유료 전환 시에도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80%를 넘었다. 이는 도토리 프렌즈의 프로그램이 시혜적인 복지가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콘텐츠’로서 인정받고 있음을 증명한다.
제주에서 '장애 비장애 통합'이라는 말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도토리 프렌즈는 오는 7~8월경, 서귀포에 자체적인 활동 공간 오픈을 앞두고 있다. 이곳을 기반으로 최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과 지역사회 자립 지원 등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김주리 대표는 마지막으로 도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남겼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제주도 안에서만큼은 ‘장애·비장애 통합’이라는 별도의 용어가 필요 없는, 그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변화의 시작을 도토리 프렌즈가 함께하겠습니다."
한편 '지역 돌봄 공동체 인큐베이팅 사업'은 금융산업공익재단이 주관하고,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가 수행하는 사업이다.